한국의 산지승원, 부 석 사
부석사(浮石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고찰(古刹)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 중 하나입니다.
국보와 보물이 다수 보존되어 있고, 한국 불교와 건축사,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 부석사 창건 설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화엄종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하고. 창건과 관련된 설화 중 유명한 것은 선묘낭자 설화이다.
의상을 짝사랑하던 선묘라는 용녀가 그를 따라와 절터를 지키고, 부석(浮石, 떠 있는 돌)을 들어 올려 도깨비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어, 절 이름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2. 부석사 신앙적 배경
정토신앙인가 ‚ 화엄 사상인가?
부석사의 독특한 구성 방법을 해석하는 견해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토신앙(淨土信仰)의 체계에 의거하여 아미타 불을 주존으로 삼고 ‚ 삼배구품(三輩九品)의 교리에 따라 전체 영역을 9개의 단으로 구성했다는 설이고 ‚
두 번째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십지론을 근거로 10개의 단으로 구성했다는 설이다.
정토신앙에 근거한 설은 부석사에 화엄 사상에 관계된 유물이 없고 ‚ 시기적으로도 화엄종이 체계를 잡기(9세기) 훨씬 전에 창건되었으므로 당시 일반화되었던 정토신앙을 근거로 삼았으리라는 시각이다. 석단도 회전문부터 무량수전까지의 9개의 단을 회전문 터) – 범종각 – 안양루라는 결절점들에 의해 3 – 3 – 3의 구성으로 본다. 이것이 무량수경에서 말하는 삼배 구품설의 구조와 대응되며 ‚ 9품 왕생의 최고 단계인 상품 상생의 경우는 무량수전의 내부를 뜻한다. 내부에 들어가면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는 아미타여래 를 만나게 되어 진정한 극락왕생의 염원을 이루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화엄 사상에 입각한 설은 의상 조사가 직접 창건한 사찰로서 그가 펼쳤던 화엄 사상과 건축 공간 사이에 연관이 있을거라는 주장이다. 우선 부석사가 위치한 태백산 주변의 산 이름 – 도솔산 ‚ 비로봉 ‚ 연화봉에서 화엄경의 이상향을 이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부석사의 전체 가람 구조는 화엄경의 34품 ‚ 8회 ‚ 10지의 각 단계에 따라 공간들이 만들어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부석사의 주불전은 무량수전으로 독존의 아미타여래를 동향으로 모시고 탑을 세우지 않았다. 화엄경 맨 마지막 장에는 화엄경의 주인공인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과 함께 아미타여래를 찬양하고 극락 세계에 귀의할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 있다. 아미타여래는 서방의 극락세계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의 아미타여래를 서쪽에 모셔 동향하도록 하였음은 철저히 교리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정토신앙과 화엄 사상 근거론의 쟁점은 부석사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석단의 구성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천왕문부터 무량수전 기단까지의 석단의 수는 보기에 따라 9단에서 12단까지 셈할 수 있다. 천왕문은 원래 일주문 터였던 것이 잘못 중건된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왕문이 위치한 석단은 제외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회전문 터 앞의 좁은 석단을 셈하느냐 일종의 계단참으로 보고 제외하느냐에 따라 9단이냐 10단이냐가 결정된다.
천왕문 위부터 범종각까지의 축과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연결하는 축은 30도 정도 어긋나 있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 범종루 밑에서 볼 때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중첩되는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견해가 있어왔으나. 최근 최종현씨(우리공간 연구소)가 건물마다 고유한 안대(案帶:바라보는 산 또는 봉우리)를 가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 이원교 씨의 논문에서 이 학설이 뒷받침되고 있다. 즉 범종각 위에서 보는 안대는 도솔봉이며 무량수전의 안대는 동쪽 으로 돌출된 작은 봉우리로 ‚ 무량수전과 그 안산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미타정토를 상징하며 ‚ 나머지 축과 도솔봉과의 관계는 미륵정토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3. 부석사 건축적 배경
1) 사찰 배치
국(局)이 넓은 땅에서는 건물을 비교적 넓게 배치하되 높은 건물을 정점으로 조화를 이루 도록 하였으며 국이 좁고 가파른 땅에서는 높은 석축과 건물을 잘 이용하여 짜임새 있게 공간 배치를 하였다. 부석사 의 경우는 물론 후자에 속한다. 부석사가 위치한 곳은 봉황산 중턱이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산줄기가 태백산에서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 서남쪽으로 비스듬히 달려 이룬 것이 소백산맥이다. 태백산에서 뻗은 줄기가 구룡산 ‚ 옥석산 ‚ 선달산으로 솟구치다가 소백산으로 이어져 형제봉 ‚ 국망봉 ‚ 비로봉 ‚ 연화봉 을 이루었다.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은 선달산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뻗은 줄기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문수산 ‚ 남쪽으로는 학가산의 맥이 휘어들고 서쪽으로 소백산맥이 휘어돌 아 거대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여 뭇 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봉황산을 향하여 읍하고 있는 형상이다. 풍수지리상으로도 뛰어난 길지에 속한다.
부석사가 들어선 터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도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어 경사가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석사에 들어서면 국이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솔길을 따라 절에 들어서면 높직한 석축단에 의하여 구분된 터에 드문드문 건물이 배치되어 있어 뒤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내려가는 길에는 건물 지붕 위로 보이는 전면의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석양이 뉘엿거릴 무렵 안양루 쪽에서 멀리 도솔봉 쪽을 바라보면 펼쳐 있는 산맥의 연봉들이 장관을 이룬다. 초점이 되는 도솔봉 오른쪽으로는 아스라이 죽령이 보인다. 가히 대단한 경승지라 할 수 있다.
산지나 구릉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길게 늘어진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심축을 따라 입구에서 안 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높낮이가 높아지도록 배치되어 있다.
배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인데 부석사도 예외는 아니다.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 라면 대석단 위 범종각까지가 전개해 나가는 공간인 승(承)에 해당되고 여기서 축이 꺽여 전환점을 맞는 안양문까지 가 전(轉)의 공간이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가람의 종국점이므로 결이라 할 수 있다.
2)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주 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 무량수 ’ 라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져 있지만 건물 규모나 구조 방식‚ 법식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무량수전에 비하여 떨어진다.
무량수전은 고대 불전 형식과 구
조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
무량수전은 정면 5칸 ‚ 측면 3칸 규모인데 평면의 경우 건물 내부의 고주 사이에 형성된 내진 사방에 한 칸의 외진을 두른 형식을 취했다. 기둥 사이의 주칸 거리가 크고 기둥 높이도 높아 건물이 당당하고 안정감 있게 지어졌다.
지붕은 팔작 형식인데 지붕의 물매는 후대 건물에 비하여 완만하다. 예로부터 건물의 구조는 단면에 위치한 도리의 수를 셈하여 말하는데 이 집은 소위 9량집으로 외목을 제외한 도리가 9개나 되는 큰 건물이다.
면석과 갑석을 짜맞추어 만든 가구식 기단과 사갑석을 받치는 지대석이 돌출된 계단‚ 원형 주좌와 고막이를 가진 초석의 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기법을 계승한 것이다.
계단 동측면에 선각된‘ 충원적화면(忠原赤花面) 석수김애선 ’ 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의 법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 주지만
평면의 안허리곡(曲) ‚ 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 ‚ 배흘림 ‚ 항아리형 보 등의 의장 수법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착시에 의한 왜곡 현상을 막는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하여 고안되 기법들이다.
안허리곡은 보통 건물 중앙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이 더 튀어나오도록 처리한 것을 말하는데 기둥의 안쏠림과 관계가 있다.
안쏠림은 기둥 위쪽을 내부로 경사지게 세운 것이다.
무량수전에서는 안허리곡과 안쏠림이 공포와 벽면에까지 적용되어 마치 평면이 오목거울처럼 휘어 있다.
귀솟음은 건물 귀부분의 기둥 높이를 중앙보다 높 게 처리하는 것인데 수평 부재의 끝부분이 아래로 처져 보이는 착시를 막아준다.
기둥의 배흘림 역시 기둥 머리가 넓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무량수전의 기둥은 강릉 객사문 다음으로 배흘림이 심하다.
공포 형식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소위 주심포계인데 매우 건실하게 짜여졌다. 주두 위에서 공포의 짜임이 시작되고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벽면 방향의 첨차와 튀어나온 제공의 길이가 똑같은 전형적인 북방계통의 수법이다. 주두와 소로는 내반된 곡선의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공 포 사이 포벽에 뜬 소로를 가지고 있는 점은 이 집만의 특징이다. 무량수전 정면 중앙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내부 서쪽에는 불단과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국보 제45호)를 모셨다.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만 동향하도록 모신 점이 특이 한데 교리를 철저히 따른 관념적인 구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열주를 통하여 이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일반적인 불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하고 깊이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진입하는 정면쪽으로 불상을 모시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는 드문 해결 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집을 만든 대목(大木)의 뛰어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대들보 위쪽으로는 후대 건물과는 달리 천장을 막지 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잛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무량수전의 천장 가구에서 고저장단의 운율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이렇게 천장을 노출시키려면 각각의 부재가 아름답게 디자인되어야 하고 또한 정확하게 짜맞추어야 하는데. 고려시대 주심포 집에는 천장을 하지 않은 것이 많다.
내부 바닥에는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을 깔아서 매우 화려하였다. 아미타경을 보면 극락 세계의 바닥은 유리로 되었다고 하는데 녹유전은 이러한 이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장엄 도구의 하나였던 것이다.
4. 결론
범종, 석등, 삼층석탑 등 많은 보물 및 문화재가 절 안에 분포되어 있으며,
사찰 배치가 화엄종 계열 사찰 양식이며, 산지에 계단식으로 배치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 적이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 풍경이 아름답고, 가을 단풍철과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안개 낀 산골 마을과 일출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찰을 말하라면 대개 영주 부석사를 첫 손가락 에 꼽는다.
이 절만이 갖는 독특한 공간 구조와 장엄한 석축단, 당당하면서도 우아함을 보이는 세련된 건물들 ‚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많은
장인들의 체취가 베어날 듯한 디테일은 부석사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게 하는 요소들 이다.
부석사의 우수한 건축미는 서양의 건축과 문화에 식상한 우리들에게 가슴이 확트일 만큼 시원한 청량제가 된다. 앞으로 전통을 계승해 나갈 방향까지도 제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석사는 진정한 한국 건축의 고전(古典)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는다.
부석사는 2018년, 다른 6개 사찰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